필자는 디자인이라는 단어를 이미지(image)를 만든다(ceate)는 뜻으로 이해하고 있다. 여기서 이미지는 그림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형상(shape or form)을 말한다. 달리 말하면 형체가 없는 것에 생명력을 불어 넣는 작업이 디자인이다.
일상 생활 속에서 자연히 다양한 소재들을 발견한다. 하늘, 빛, 그림, 영화, 음악, 돌, 나무 등 모든 소재들은 어떤 활용을 하는가에 따라서 우리에게 매우 유익한 가치가 된다. 유무형을 가릴 것 없이 소재를 활용하는 것을 공예(craft)라고 한다면 공예품(craftwork)의 그 맨 첫 작품을 만드는 작업이 디자인이라 할 수 있다.
'그렇다면 과연 누구를 위해 무엇을 어떻게 만들어서 보여줄것인가?'
이 물음에 대해서 오랫동안 고민한 흔적이 있는 현수님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중학교 때 미술을 배우고 싶다고 해서 크게 혼이 났어요"
아버지는 공무원이셨다. 그 중에서도 선생님이다. 미술을 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공부를 하기를 바랬다. 그림을 그리고 싶다는 이야기를 할 때 그런 생각을 하지 말라고 매번 강하게 이야기 하셨다.
위로 누나가 3명이다. 나이 차이가 나는 큰 누나가 대학교에 입학 할 때 '나는 아빠가 원하는대로 공부를 해서 대학을 가지만 너는 니가 원하는 것을 했으면 좋겠어'는 이야기를 했다. 버스에서 했던 그 이야기가 아직도 기억에 생생하다.
그날 이후 더욱 그림을 그리고 싶은 마음을 어떻게 할 수 없었다. 혼이 날 줄 알면서도 아버지를 계속 설득을 했다. 그러던 고등학교 2학년 어느날 아버지는 나를 미술학원에 데려가셨다. 그렇게 늦게 그림을 시작했다.
아버지는 미술학원에 가는 그날까지도 내가 미술을 하는 것을 원하지 않았던 것 같다. 그런데도 누나가 셋인 막내 아들은 어린 시절 부터 일관되게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결국 주변에 미술에 관해 이런 저런 것들을 물어 보셨던 것 같다.
"아버지는 왜 그 그토록 내가 그림을 하는 것을 원하지 않으셨을까?"
이제와서 아버지의 마음을 헤아려보면 아버지는 미술이 어려운 길이라고 생각을 하셨던 것 같다. 아버지의 직업은 한번 배우면 이후에는 평생을 별다른 큰 노력을 들이지 않아도 계속 사용할 수 있는 것들에 반해, 미술은 그렇지 않은 것이라고 생각하신 듯 했다. 예술이란 끊임 없는 창작의 고통속에 시달리는 삶이라고 여긴 듯 하다.
실제로도 맞는 말이다. 끝없이 세상의 변화를 인지해야 한다. 트랜드를 알고 기술을 습득해야 한다. 그런데 반대로 보면 직업적인 재미가 있다. 죽을때까지 공부해야 하는 직업이다. 그래서 어려운 직업인 것이 맞다.
"아들이 편한 길을 가기를 바라셨던 것 같아요."
"고등학교 때면 좀 늦은 시작 아닌가요?"
"그렇죠. 엄청 늦은 거죠."
늦게 입시 준비를 시작했지만 미리 준비해온 친구들이 비해서 잘한다고 생각했다. 실제로도 상향 지원을 많이 했었는데 다 떨어지고 지방에 있는 대학에 갔다. 일종의 쓰디쓴 실패다. 지금와서 돌이켜보면 이 실패는 약이었다. 디자인에 대한 내 열망을 더욱 크게 부추기는 계기가 되었다. 안주하면 안되겠다는 생각을 했다.
결국 만족할 수 없는 커리큘럼으로 인해서 다니던 대학을 포기하고 새로운 도전을 계획했다.
그리고 삼성 디자인 학교(Samsung Art & Design Institute)를 만났다.
"정말 잘하는 애들이 많더라고요."
기초 디자인을 배울 때는 타고난 재능을 가진 애들에 비해 부족함을 많이 느끼던 시기였다. 타고난 애들과의 실력차이가 날 수 밖에 없었다. 특히 순수 미술 부분에서는 잘하는 애들은 너무 두드러지게 잘 보였다. 그들은 건드리는 것 하나하나가 특별했다. 이처럼 재능은 극복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자연스럽게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일까를 고민하게 되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수행해야 하는 디자인 난이도는 올라갔다. 디자인 난이도가 올라가니 (누구도 예외 없이) 노력이 없으면 결과물이 안나오게 되었다.
그때 알았다.
"누가 봐도 열심히 했다는 것이 보이게 되거든요."
디자인은 기술의 영역에도 포함이 된다는 것을 깨닿게 된 것이다. 수많은 이미지 중에서 이 메시지에 적합한 표현을 위해 어떤 활용을 할 것인지를 결정하는 것이다. 따라서 디자이너는 일종의 기술자이기도 하다.
결국 주위에 재능있는 친구들이 많았던 것은 더 잘하고 싶은 마음이 들게 해준 일종의 계기이다. 그래서 대학 시절 내내 학교에 붙어 살았다. 내가 더 노력할 수 있는 곳에 나를 던져버리고 그 안에서 버티고 견뎌내는 것에서 스스로 발전하기를 바라는 생각이었다. 매 과제마다 최선을 다했다.
당연히 좋은 결과가 있었다.
필자는 이 이야기를 들었을 때 예술이라는 것에 대한 생각을 다시 한번 정립하는 계기가 되었다. 이를 테면 정교한 명품 기계식 시계를 만드는 사람들을 보면 "예술이네..."라는 말을 하는 것을 주저하지 않는다. 결국 예술이란 완성도의 영역에도 있는 것이다. 노력을 통해서 얻어진 지식과 경험과 스킬을 활용해 완성도가 높은 디자인을 생산한다. 분명 예술(art)이다.
"실제 우리가 하는 업무와 상상속의 디자인과는 많이 달라요."
첫 회사를 나와 작은 에이전시를 시작했다. 멤버들은 그 회사에서 같이 고생한 친구들이었다. 함께라면 뭐든지 할 수 있을거라 생각했다. 그래서 자취방에 테이블을 두개 놓고 회사를 시작했다. 나는 그런 그 친구들 앞에서 딱 한번 운적이 있다. 일하면서 흘렸던 처음이자 마지막 눈물이었다.
신세계에서 론칭을 준비하고 있는 커머스 프로젝트를 하고 있을 때였다. 새로운 서비스를 보여주는 신규 커머스다 보니 요청하는 디자인적 감도가 높았다. 해야 할 페이지의 수도 엄청났다. 지독한 수정의 연속이었다. 8개월 간 야근과 철야가 계속되었다. 그렇게 겨우 프로젝트 막바지쯤에 그날도 밤을 새고 아침에 겨우 세수만 한 뒤 아침 미팅 자리를 참석하려고 친구들을 집으로 보냈다.
에이전시 일이라는 것이 본래 클라이언트에게 끌려다니다 보니 아니나 다를까 그날도 엄청 깨졌다. 한숨을 쉬며 건물을 나서려는데 1층 로비 한켠에서 밤샘에 찌든 채로 혼자 미팅간 나를 기다렸던 친구들이 보였다. 보는 순간 복잡한 심정에 한시간이 넘게 펑펑 울었던 기억이 있다.
일은 예술이 아니다. 자칫 본인의 일에서 자신이 하고 싶어하는 예술성을 꺼내는 디자이너가 있다. 하고 싶은 것과 해야 하는 일을 구별하는 것은 디자이너의 기본 소양 중에 하나이다.
"디자인에 영감이라는 건 없다. 디자이너도 수많은 리서치와 정보 속에서 그 디자인의 답을 찾아낸다."
빅픽처의 디자인 크루에서는 7명의 디자이너가 있다. 디자인 성향은 가지각색이다. 팀 내에서 다양한 성향의 다자이너가 있는 것은 서로에게 매우 자극이 된다. 서로의 생각을 이해하고 의견을 주고 받으면 함께 성장할 수 있다. 지금 빅픽처 이곳은 그런 곳이다.
필자는 '어떤 한 사람이 어떤 배경에서 성장해 지금 어떤 사람이 되었는데, 오늘날 이곳에 와서 어떤 이상을 펼치고 있는가?' 같은 이야기를 좋아한다. 그것에 연장 선상에서 현수님과의 2부에서는 그가 가진 디자인 철학과 빅픽처 인터렉티브에서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과연 이 디자이너는 무슨 이야기를 할까?' 이 이야기는 절대로 현실을 벗어난 이야기여서도 안되고 너무 현실적인 이야기여서도 안된다. 딱 그 어딘가 언저리에 있어야 한다.
(2부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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