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틀을 깨는 사람 #1 최강호 팀장

by Blog.bigpico 2022. 8. 23.

영감을 준 작품 '제리 맥과이어'와 에이전트라는 꿈

 

"고등학교 3학년 때 결심을 했어요" 

 

제리 맥과이어라는 스포츠 에이전트 영화에 인생의 스파크가 튀었다. 에이전트가 되겠다고 결심한 후 바로 정보를 찾기 시작했다. 국내에서는 거의 아무것도 나오는 것이 없었다. 결국 미국행을 결심했다. 이후 미국 생활은 내 인생의 가장 큰 부분을 차지했다. 그곳에서의 모든 경험이 지금 나의 가치관을 형성시켰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미국이 곧 순탄한 길이 었다는 의미는 아니다. 시작은 집안의 반대를 무릅쓰는 일이었다. 

 

우리 집안은 다분 유교적이다. 누나가 둘 있는데 성인이 되어서도 통금시간이 있었다. 특히 아버지는 어린 나이에 접하게 될 서양 문화에 대해 긍정적인 시선이 있었다고 보긴 어려웠다. 미국에 간다는 것에 대해서 좋아하지 않았다. 이런 아버지의 가치관 아래에서는 유학에 대한 경제적인 지원을 받기가 어려웠다. 누구든 이 상황에서 선택지는 둘 중 하나다. 유학의 꿈을 포기하거나 어떻게 해서든 유학의 꿈을 이뤄내거나, 그중 나는 유학의 꿈을 이뤄냈다.    

 

증명이 필요했다. 먼저는 서울에 있는 꽤 괜찮은 학교에 합격하는 것부터가 시작이다. 대학 합격 통보를 받은 그날 그 학교에 가지 않고 유학을 가겠다고 부모님께 말했다. 이후 곧바로 (*상대적으로 교육열이 높았던) 삼촌을 찾아갔다. 간단히 말하면 내가 먼저 미국에서 자리를 잡으면 사촌 동생들을 내개 보내라는 딜이었다. 내가 먼저 넘어간 후 순차적으로 두 명의 동생들이 미국으로 날아왔다. 그렇게 미국 유학 생활을 온전히 마치는 28살까지 나는 유학생이자 부모였다. 

 

소신과 책임감 있는 행동, 그리고 미국 유학 생활에서의 결과들은 점차 아버지의 생각도 변화시켰다.

 

미국생활

미국 생활은 다이나믹의 연속이다. 멋도 몰랐다. 가서 부딪히자라는 생각으로 갔다. 보통 유학생들은 그 지역 문화를 잘 모르다 보니 어떤 말과 행동에 오해가 생실 여지가 많고 자주 그렇게 되면 위축이 된다. 결국 본의든 아니든 '아시아인은 소극적이다'는 인상을 준다. 난 그런 이미지를 원치 않았다. 수업이 시작되면 주변의 친구들에게 먼저 말을 걸었다. 어제 있었던 스포츠 경기와 같은 것은 좋은 소재가 되었다. 금방 친해졌다. 인간관계 스펙트럼이 넓어졌다.  

 

학창 시절에는 조별과제에는 늘 리더를 자청했다. 완벽하지 않은 언어였지만 발표도 내가 했다. 또 다양한 부대 활동들도 선뜻 먼저 제안하곤 했다. 특별히 유학 당시 제리 맥과이어의 실존 인물인 Leigh Steinberg가 순회 교육 활동 중이었다. 내가 열망해서 우리학교도 방문할 수 있도록 이메일을 보냈다. 활동하던 스포츠 동아리에도 열렬히 홍보했다. 결국 정식 과정이 오픈되게 되고 행사를 진행했다. 그렇게 (나뿐 아니라) 아시아인에 대한 편견을 하나씩 바꾸어 나갔다.


 "충분히 매력있는 콘텐츠이지요"

 

마쳐야 할 연구가 최종 종료된 이후 커리어에는 로스쿨 등 여러 선택지가 있었다. 다만 최종적으로 한국으로 돌아오겠다는 결심을 했다. 어린 시절에 부모님의 곁을 떠나 오래 지냈기 때문에 효도할 기회가 없었던 것이 가장 큰 이유였다. 경험이라는 것은 한국에서 쌓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한국에 돌아와 몇 군데 이력서를 넣었는데 거의 곧장 회신이 왔다. 가장 빠르게 확정된 것이 이스포츠 마케팅 업무였다. 스포츠 에이전트를 지망했던 나에게 이스포츠는 생소한 분야였지만 글로벌로 각광을 받고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주저 없이 선택했다. 

 

업무를 막 시작하던 시기는 '소통하는 인플루언서' 시장이 계속 성장하는 시기였다. 여기에 마케팅 포인트를 잡았다. 인플루언서들은 대게 사회 경험이 많지 않기 때문에 커뮤니케이션이 쉽지가 않다. '이 방구석 게이머에게 어떻게 하면 잘 다가갈 수 있을까?'를 고민하는 시간이 늘었다. 주로 평소 방송 스타일이나 콘텐츠를 기억한 후 다가갔다. 정 없으면 키우는 애완 동물의 이름이라도 대었다. 1명씩 1명씩 늘려가던 파트너십은 어느새 100명이 넘어섰다.     

 

우리는 파트너를 생각해야 했고 파트너인 인플루언서가 원하는 것은 콘텐츠다. 자연히 콘텐츠를 인플루언서와 같이 만들어 브랜딩과 제품 홍보 도구로 활용하면 어떨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이후 여러 대회를 기획했다. PUBG 한중일전, 발로란트 크리에이터 매치 등이 대표적이다. 결국 인플루언서와 함께 호흡하면서 만들어 나갔던 이런 콘텐츠들이 높은 흥행을 기록하면서 대회 콘텐츠가 가진 매력을 충분히 알아가게 되었다.  

 

인플루언서와 함께 진행했던 대회


"한계가 있었죠, 분명히!"

 

회사는 세일즈가 목표다. 콘텐츠 흥행이 궁극적인 목표가 아니다. 더 나은 콘텐츠를 기획하는데 시간을 할애 하기 보다는 흥행될 콘텐츠로 세일즈 KPI를 어떻게 실현할지에 대해 시간을 쓰기를 원했다. 대회를 위한 것이 아닌 건 아니지만 제품 판매를 위한 대회여야 했다는 점을 분명히 해야 했다. 이는 기획 범위에 대한 한계로 작용했다. 그러나 빅픽처는 사정이 달랐다. 특별히 내가 입사할 당시에는 플랫폼을 홍보해야 하는 미션이 있었다. 플랫폼 홍보란 더 좋은 대회 더 재미있는 대회만 고민하면 되는 것이다. 

 

빅픽처는 토너먼트 플랫폼인 레벨업지지에 누구나 대회를 만들 수 있는 기능을 제공하기 위한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었다. 개발 완료 시점에 맞춰 프로모션을 기획했다. '리그 마스터즈'였다. 이후 겐지 피구 대회, 로스트아크 속 인플루언서 찾기 대회, 저티어만의 리그, 극성팬과의 아유회 등을 연이어 기획했다. 시장에 개발 완료된 기능을 활용하는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다양한 시도를 한 것이다. 지금까지의 경험을 살려 기존의 정형화된 이스포츠 대회가 아닌 보다 다채롭고 신선하고 새로운 형태의 대회 콘텐츠를 만들어보려고 노력했다. 

당시 진행했던 리그들

 

인플루언서의 니즈는 대회를 통해서 이끌어 낼 수 있다. 그런데 그들은 정형화되어 있는 이스포츠 컨텐츠는 가치가 높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인플루언서들은 그들이 서식지인 야생답게 스스로 노력해서 더 재미있는 콘텐츠를 만들어 내는 것에 (또는 그런 형태를 가진 것에) 관심을 가진다. 초점을 바꿔야 한다. '시청자들에게 주는 재미만을 추구하자!' 우리는 늘 이런 형태도 이스포츠라 부를 수 있다. 왜냐하면 경쟁의 요소가 들어가 있기 때문이다. 

 

당시 이런 나의 생각을 회사가 이해해줬다. 내가 진행한 인플루언서들과의 다양한 이벤트가 회사의 사업 방향과 맞다고 여겼다. 이후 때가 되어 본격적으로 추진하기에 이르렀고 그렇게 ECM 사업팀이 만들어졌다. 그 모든 과정에서 나의 잠재력과 그동안의 성과가 인정되었다. 결국 지금 팀을 맡아 이끌고 있다. 


보통 인터뷰 1편은 회사에 들어오기 전까지의 과정을 그린다. 그런데 벤팀장은 현재 담당하게 된 사업의 성격까지 설명하게 되었다. 이유는 정확히 이 일을 하기 위해서 합류했기 때문이다. 사회생활의 첫 시작과 이후 얻게 된 인플루언서에 관한 배경과 이해, 그리고 빅픽처에서 한 일이 분리가 안된다. 물론 이 이후에 풀어나가야 하는 이야기도 적지 않기도 하다. 

 

모든 것은 인과가 있다. 누군가가 어떤 생각을 하기까지 과정이 있다는 뜻이다. 많은 사람들이 인플루언서를 활용해서 콘텐츠를 만든다는 것과 대회 형식을 빌러온다는 것에 흥미를 가지지만 특별한 '철학'을 바탕으로 하는 경우는 많이 없다. 조금만 파고들어 "왜?"라는 질문을 하게 되면 결국 "그냥 재미있을 것 같아요"가 전부다. 

 

이제 2편에서 이어질 벤 팀장의 '이스포츠는 어떠해야 하는가'에 관하여 그가 가진 철학을 들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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