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 때부터 일종의 이상한 강박관념이 있었는데 그것은 '먹는 데 사용하는 시간이 아깝다'였습니다. 그래서 지금도 특별한 약속이 없으면 점심은 항상 사무실에서 샌드위치를 먹거나 김밥을 먹습니다. 저녁도 (혼자 먹을 때는) 챙겨 먹는다는 개념이 거의 없습니다. 냉장고를 열어서 아무거나 그냥 있는 대로 또 서서 먹을 때가 많습니다. 물론 지인들과 점심이나 저녁을 함께 하는 것은 즐겨합니다. 여유 있는 술자리도 가지지요. 다만 그것들은 저에게는 무언가 먹는데 시간을 쓴다는 개념이 아닙니다. 그저 사람과 만나서 친분을 다지는 도구일 뿐입니다.
반대로 아무리 많이 써도 전혀 아깝지 않은 것도 있습니다. 바로 게임을 하는데 사용하는 시간입니다. 그래서 저의 어린 시절을 떠올리면 1000원짜리 슈퍼 빵과 1000미리 우유곽이 여기저리 널브러져 있는 PC데스크에 제가 앉아서 하루 종일 게임을 하고 있었던 모습이 대부분을 차지합니다. 이를 비교적 넉넉하지 않은 어린 시절을 보내서 게임 외로 할 수 있는 여가가 많지 않았었기 때문이라 오랫동안 생각해왔습니다. 그런데 지금 나이에 와서 생각해 보니 당시 그 모든 것과도 비교해도 저에게는 게임이 그저 가장 강력했던 것 같습니다.
따라서 지금 빅픽처인터렉티브와 같은 이스포츠 회사에서 근무를 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요. 여전히 게임을 즐기고 게임을 보고 게임에 관심을 가지며 일을 열심히 하면서 관련된 다양한 공부하고 있습니다. 회사 공식 블로그의 이스포츠인사이트도 그 결과 중에 하나지요. 결국 제게 이 모든 것은 '게임에 시간을 쓰는 것은 아깝지 않다'가 될 것입니다. 어쩌면 이 나름 긴 역사를 지닌 이유들이 모여 이 결론을 내려지고 저를 매년 지스타고 내려가고 싶다는 생각을 만드는 것 같아요. 그렇다면 여러분들의 히스토리는 어떠신가요?
오늘은 저에 두가지 일정에 대해서 소개를 하려고 합니다. 먼저는 이상광 박사님의 [ETRIGG] 부스 방문과 상품에 대한 감상평입니다. 이상광 박사님은 한국전자통신연구원 소속 박사님이시고 현재 인공지능 기반 이스포츠 분석 기술 개발 과제를 담당하고 계십니다. 저는 페이스북에서는 이미 박사님과 과제에 대해서 알고 있었던 상황이었고요. 올해 지스타에서 부스를 운영하셨는데 미리 방문을 예고드렸지요. 다만 B2B에서 운영하셨어서 많은 분들이 쉽게 방문하기는 어려웠을 것으로 추측합니다. 그래서 오늘의 이 리뷰가 도움이 되실 분들도 계시리라 생각을 해보고요.
앞서 인공지능 기반이라고 설명을 드렸는데 정확한 기술 이름은 머신 비전입니다. 머신 비전이란 AI 기술의 일종으로 머신(기계)이 인간과 동일한 구조의 시각에 의한 판단 기능을 부여받는 것을 말합니다. 다르게는 기계가 시각적으로 사물을 인식하고 인식한 후에는 상황에 따라 어떤 의미가 되는지 스스로 판단한다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페이스북에도 고백한 바 있지만 저는 이 기술의 이름을 몰랐습니다. 그래서 계속 그 자리에서 혼자 '이미지 트래킹'이라는 단어를 사용하면서 무언가 제가 가지고 있는 생각들을 설명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이미지 트래킹이라는 단어를 사용했던 이유가 있어요. 과거에 저는 협회에서 근무할 때 리서치 한 회사와 후원사의 효과 추적이라는 과업을 담당한 적이 있습니다. 내용을 간단하게 설명을 하면 방송에서 유니폼, 그래픽, 배너 등 다양하게 노출되는 브랜드 로고의 시간과 브랜드 로고의 온전성 등을 추적해서 광고 단가에 맞춰 효과를 환산하는 작업입니다. 그래서 이를 테면 리그 스폰서의 '연간 리그 후원 금액 대비 광고 효과는 어떻다'라는 결론을 도출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지요. 담당자는 그 자료를 바탕으로 회사에 보고서를 작성하게 됩니다.
이때 사용했던 단어가 이미지 트래킹이에요. 따라서 오늘 소개하는 머신 비전과 구조적으로 거의 동일한 작업 과정을 가지고 있는 것이라고 볼 수 있겠지요. 이렇게 설명하고 보니 이미지 트래킹이라는 단어를 사용했지만 이것을 기술이라고 말하지 않는다면 완전히 틀린 활용은 아니지 않나라는 생각도 해봅니다. 머신 비전도 이미지(텍스트 포함)를 추적해서 인식하고 그로 인해 정보를 모은다는 점은 동일하지요. 다만 차이점이 있다면 기술의 수준이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우수하다는 것과 모은 정보를 기계가 스스로 가공/분석한다는 점입니다.
더군다나 그 완성된 정보를 우리에게 제공하는 것까지 실현합니다. 또 실시간으로 전달한다는 특징도 지니고 있습니다. 그래서 더 확장성이 있는 사업성을 띄게 됩니다. 저는 이런 생각을 할 때마다 늘 많은 생각을 하게 됩니다. 제가 협회에서 그 일을 했던 그때가 2011년입니다. ETRIGG를 본 지금이 2022년이고요. 10년 만에 강산이 너무 빠르게 바뀝니다.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해온 공부도 지금 하는 공부의 양도 더 늘어만 가는데 아직도 더 배워야 할 것들이 많이 있습니다. 이쯤 되면 (정말) 죽어야 끝나는 게 아닌가 싶은 생각입니다.
그러면 비전으로 무엇을 하는가가 궁금해야 할 것입니다. 일단은 ETRIGG의 브로셔에 적혀 있는 내용을 간략하게 알려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주요 기술은 비전을 활용한 라이브 게임 분석 기술과 인게임 플레이 인식 기술이 있고 (인식을 활용해 분석 후) 게이머 프로파일을 생성하고 게이머를 위한 훈련 시나리오를 추천하는 기술이라 설명하고 있습니다. 활용에 관해서는 실시간 승부 예측, 주요 장면 자동 제작, 조합 추천 서비스 등이 있습니다. 가장 인상적인 것은 구조적으로 부정행위 탐지도 가능하다고 합니다. 더 궁금하신 분들은 이상광 교수님께 연락하시면 굳이겠지요.
참고로 파트너십 등에 관해서 들은 이야기를 전해 드리면 국책 연구 과제이기 때문에 기술 이전 형태로 파트너십 체결이 가능하시다고 합니다. 마지막으로 같이 동행했던 지인의 의견을 남겨 드리는 것으로 ETRIGG의 관련된 내용을 마무리 짓도록 하겠습니다. 이 기술을 코어로 가져가겠다는 곳에서는 원천 기술로서의 의미가 있기 때문에 협업이 어려울 수 있지만 기술의 활용을 목표로 한 커스터 마이징 디벨롭 그리고 비즈니스 활용 부분에 대해서 주로 고민을 하고 있는 기업이 있다면 유의미한 협업이 가능할 것 같다는 코멘트를 남겨주셨습니다. 저도 동의하고요.
마지막 날 마지막 일정으로 1개의 세미나 세션을 마음에 염두에 두고 있었습니다. 바로 모티프의 이득규 디렉터님의 발표였습니다. 온라인상에서 그분을 개인적으로는 모르는 분들에 의한 평가는 아주 이상적이지는 않습니다만 제가 어릴 적에 가장 사랑했던 IP를 리메이크하셔서 현재도 즐기는 게임의 디렉터님이시기에 이미 (세간의 평가가 아무런 영향을 줄 수 없을 정도로) 상당한 흥미가 있었습니다. 저는 지금도 첫 번째 게임을 뽑으라고 하면 올타임 이 게임을 뽑습니다. 단 모리스 라벨의 볼레로 음악이 나오는 장소에서 물어보신다면 은하영웅전설4라고 말하게 될 거예요.
발표 스킬이나 전달력 호소력 기승전결 흥미유발 등등만 놓고 보면 그리 대단할 것은 없는 발표셨어요. 요즘 거의 누구나 방송을 할 수 있다 보니까 말씀을 잘하시는 분들은 사실 적지 않기는 합니다. 또 우리가 그런 것에 많이 익숙해져 있지요. 우리는 보통 말 잘하는 능력을 가진 사람을 부러워합니다. 얼마나 부러운가는 또 다른 이야기라고 하더라도요. 전달력이 뛰어나면 듣기에 좋고 결국 기분도 좋아지기에 그런 것이죠. 물론 디렉터님이 말씀을 못하시지는 않으셨어요. 저희 같은 비즈니스맨의 시각에서 비춰봐도 나쁘지는 않은 수준이셨습니다.
혹은 일반 사람들에 비해서는 조금은 잘하는 수준이라고 말해야 할 수도 있을 듯해요. 준비한 것이 '굉장히'라고 이야기할 수 있을 만큼 많았다고 느꼈기 때문에도 더 그럴 수 있어요. 다른 측면에서는 말로 전달하는 것에 대한 카리스마 종류의 것들은 거의 없으셨어요. 비교적 조근조근 말씀하시는 스타일이시고요. 또 발표 내용은 거의 개발에 관련된 이야기였기 때문에 제가 한 50% 정도는 알아 들었을지도 확신이 안됩니다. 그런데 저에게는 투자할 만한 가치가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그 모든 것을 상쇄시키는 발표 시작 시점의 첫 문장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게임 개발 32년차입니다"
요즘은 한 사람이 하나의 일을 얼마나 오래 할까요? 이렇게 말씀드리면 어떻게 느끼실지 모르겠지만 이 분에게서 게임을 해왔던 세월과 게임을 개발한 세월을 빼면 뭐가 남을까라는 생각을 할 정도였습니다. 누가 이분에게 과연 무엇을 이야기할 수 있고 또 그런 것들을 이야기한다는 것 자체가 맞나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요. 종종 우리는 남을 평가하고 업적을 인정하지 않는 일들이 쉽게 하는 경향이 있는데 절대 그래서는 안될 것 같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디렉터님이 설명하는 좌충우돌기는 개발을 1도 몰라도 흐름 자체는 재미가 있었기 때문에 그 자체로도 훌륭했지만 저는 아마도 이 첫 문장에 엄청나게 영향을 받았는지 언제 끝났는지도 몰랐습니다.
물론 우리는 심지어 공자를 만나도 세상의 도에 대해서 내 생각은 이렇다고 이야기 할 수 있지요. 하물며 게임 개발자에게 "당신 그렇게 게임 개발하지 말라"라고 왜 말 못 하겠습니까! 다 할 수 있어요. 무슨 의견이든 개인은 원하는 바를 말할 수 있습니다. 10살 우리 딸도 방금 게임을 깔고 1판 해본 뒤에 '이 게임 되게 별로야'라고 말하면서 바로 지워버릴 수 있습니다. 그 아이가 그런 판단을 할 수 없어야 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인간이 스스로 가진 자유를 바탕으로 하는 존엄성이 그 무엇보다도 우선시하게 되어있다는 사고를 전재로 하기 때문에 가능한 것입니다.
그러나 그와 동시에 그 존엄성이 우리가 개발자님의 세월을 녹여 쌓은 삶의 가치를 존중하지 말아야 할 이유까지 되는 것은 아닙니다. 공자와 다른 의견을 이야기할 수 있어도 공자의 삶과 공자의 생각을 부정해서는 안된다는 뜻이겠지요. 존중입니다. 그리고 그것을 이 세상이 알고 있습니다. 이 사고에 흐름에서 비롯된 그 사실이 매우 아픈 비수가 되어 저를 돌아보게 만들었어요. '나는 과연 어떤 평가를 받는 사람으로 나아가고 있을까?', '이 관점에서 나는 타인을 어떻게 대하고 있나?', '무엇을 그렇게 두려워하고 있나!' 이런 질문의 연속을 경험했다는 뜻이 될 것입니다.
얼마 전에도 한 기고를 올리고 다시 그 기고를 내린 다음 개인 블로그로 옮겼던 경험을 가진 저에게 상황과 환경과는 아무런 상관 없이 순전히 저 개인에게만 적용되는 어떤 본질적 질문이 있었다고 한다면 이번에 이득규 디렉터님으로부터 나름 해답을 받았던 시간이었습니다. 그로 인해 상당한 해방감을 맛보았습니다. 그래서 이 시간 저는 여러분들에게도 비슷한 질문을 하고 싶어요. 여러분은 과연 세월에 따라 어떤 순간이 와서 어떤 준비된 자리에 서서 무언가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려 할 때 어떤 문장으로 시작하고 싶으신가요?
2일간의 지스타의 일정은 이렇게 마무리하고!
다음주부터는 평소 넘버대로 인사이트 포스트를 진행하도록 하겠습니다.
총 3편 읽어주신것에 감사의 마음을 전하면서 저는 다음 주에 다시 돌아오도록 하겠습니다.
대외협력실장
구마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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