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에서 가장 많이 재배되는 귤 품종은 온주 밀감입니다. 온주 밀감이 제주에서 많이 재배되는 이유는 밀감 열매가 바람에 강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인상적인 것은 온주 밀감 나무 자체는 바람이 많이 부는 곳에서는 잘 자라지 않는다고 해요. 이유는 온주 밀감 나무는 뿌리를 깊게 내리지 않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제주에서 온주 밀감이 많이 생산되는지를 궁금해할 필요가 있을 것 같아요. 이유는 탱자나무에 접붙여서 키우기 때문이에요. 탱자나무는 제주의 바람을 충분히 견딜 만큼 온주 밀감 나무와 갈리 뿌리를 아주 깊게 내린다고 합니다.
온주 밀감은 중국어 발음으로는 원저우이고 일본어로는 온슈로 역사 속에서 오랫동안 사랑받아온 품종입니다. 지금은 여러 지역에서 광범위하게 재배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에 반해 탱자나무 자체는 세상 쓸데없는 나무입니다. 열매는 귤과 비슷한데 전혀 먹을 수가 없어요. 그리고 나무에는 톱을 연상시킬만한 무시무시한 가시가 있다고 합니다. 한번 찔리면 너무 아파서 어린아이들은 며칠을 고생한다고 하네요. 그런데 그런 나무가 온주 밀감이라는 상품을 만났을 때 비로소 존재의 의미를 찾게 된 것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물론 인간의 관점에서 그렇다는 것이지요.
어려운 시기를 보통 강한 바람에 잘 비유하곤 합니다. 어떤 흐름에 기인해서 그것을 비유적으로 설명하는 것이라면 물도 가능하고 계절과 같은 것도 할 수 있습니다. 실제로 물에는 잘 비유하지 잘하지 않지만 계절에는 곧 잘 비유하곤 하지요. 이를테면 '겨울이 온다'가 될 것입니다. 반대로 바람이 사용되는 이유는 느껴는 지지만 상황에 따라 다르고 눈에는 전혀 보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시대의 흐름에 대해서 우리가 그것을 느끼는 것과 거의 비슷하지요. 누구는 즉시 실직을 하거나 고 금리에 타격을 받거나 높은 물가 상승률에 의해 어려워하지만 세상 어느 곳에의 누군가는 또 그렇지 않습니다.
또한 바람에 비유하는 다른 이유는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알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왜'라는 것을 찾습니다. 따라서 결과론적인 해석은 세상에 많이 존재합니다. 이를 테면 코로나19는 매우 대표적인 예가 될 것이에요. 인간은 팬데믹을 예상하지 못하며 팬데믹의 여파는 고스란히 받습니다. 그리고 팬데믹에 대해서 결과론적인 해석을 하지요. 우리의 고개를 끄덕이게 만들기에 의미가 없지는 않습니다만 우리의 삶을 변화시키지는 못합니다. 여전히 누구도 언제 끝이 날지 알지 못합니다. 무엇에 영향을 줄지도 알지 못하죠. 전쟁과 같은 것이 터지면 그제야 또 결과론적인 해석을 합니다.
한마디로 이런 것들은 전부 바람과 같은 것이죠.
연말이 되면 대부분의 회사가 결산을 하게 되는데 결산의 진정한 의미는 계획이 있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계획이 없었다고 하더라도 결산이 불가능한 것은 아니지만 점검은 분명히 제한적이게 됩니다. 계획이란 목표가 있었다고 풀이할 수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목표는 정량적인 것과 정성적인 것이 모두 포함됩니다. 예를 들어 매출을 목표로 한다면 정량적인 것입니다. MAU와 같은 수치도 마찬가지지요. 정성적인 것은 고객 만족도와 같은 것들입니다. 수치화가 불가능하지는 않습니다. 설문조사 같은 것을 할 수 있지요. 다만 그렇게 해서 수치화한다고 해도 정량적이라고는 잘하지 않습니다.
여하튼 결산이 완료되면 우리는 내년도 계획을 세울 수 있게 됩니다. 우리가 사는 유니버스는 시간의 지배를 받기 때문에 모든 것에는 과거가 있습니다. 따라서 과거에서 오늘로 이어지는 것이 있게 되고 또 그것을 바탕으로 미래로 나아가게 되지요. 결산이란 어디서 우리가 어떻게 왔는지를 보여주는 도구입니다. 우리를 설명을 하는 것이라고도 할 수 있지요. 우리가 어디서 왔는지를 알면 우리가 누군지를 아는 것이 됩니다. 어디로 가야 할지 설득의 논리가 서게 됩니다. 물론 설득의 논리가 곧 사실이라는 뜻은 아닙니다. 설득(논리)과 실현(성공)은 다른 이야기라는 의미입니다.
내년도 계획을 세우게 되면 갈 바는 정해진 것입니다. 우리는 다 객체이기 때문에 마음속으로 가능한 영역을 전부 다르게 정합니다. 누군가는 보수적으로 설정한 것이라 생각할 수 있고 누군가는 실현 불가능 한 것을 목표로 잡았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다 한배를 탑니다. 서로 잘 맞지 않을 수 있으나 맞춰나가는 과정까지도 결국 계획에 일부라 해야 할 것이지요. 이 시대는 이러한 이유로 더욱 탁월한 리더십을 필요로 합니다. 이 탁월한 리더십은 대부분의 상황에서 조율을 책임지게 되는데 오늘날의 이 조율의 키워드가 보통 애자일이 됩니다. 이유는 세계가 아주 복잡하기 때문이지요.
오늘날의 대부분의 비즈니스는 더 나은 제품을 개발해 잘 홍보하여 더 많은 판매를 이뤄내는 것입니다. 세계는 신기술과 그 기술을 바탕으로 하는 새로운 서비스에 열광하지만 여전히 우리 세계의 대부분의 경제 시스템은 위에서 설명한 것에 크게 벗어나지 않습니다. 마치 기술 자체가 모든 막의 주인공인 것 같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는 뜻입니다. 가장 최신 기술의 집합체이자 오늘날의 미래 전형적인 상징으로서 아이폰을 예로 들어 볼게요. 아이폰도 결국 신제품을 잘 개발해 홍보해 더 많은 판매가 목표입니다. 삼성도 마이크로 소프트도 테슬라도 전부다 마찬가지입니다.
이를 증거 하는 또 다른 방법도 있습니다. 여전히 우리는 산업혁명이라는 단어를 쓰고 있는 것이 그 증명입니다. 다만 이 산업혁명을 1~4차로 나누고 그중에 우리가 4차에 있다고 설명할 뿐이지요. 결국 지금 우리가 설명하고 있는 어떤 이 특정 시스템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않는 이상은 앞으로도 차수만 늘어갈 것이고 예측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제가 오늘의 주제에는 조금 벗어난 이야기를 드리면 저는 산업혁명의 끝에는 탈 산업혁명이라는 단어를 쓸 것으로 추측합니다. 그리고 그 시기는 인간이 대부분의 육체적 노동에서 벗어나게 되는 때라 보고 있지요. 전적으로 개인적 생각입니다.
조직이 애자일 해지기 위해서는 조직이 존재하는 목적에 맞게 성격을 개편해야 합니다. 그리고 목표를 실현에 적합한 구조를 지녀야 하지요. 그러나 한 가지 기억해야 하는 점은 어떤 조직도 모든 것을 가질 수는 없습니다. 따라서 선택과 집중이라는 단어가 항상 쓰임새 있게 사용되지요. 따라서 올해 무엇을 할 것인가를 정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렇다면 올해 무엇을 할 것인가를 잘 정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지가 궁금해집니다. 더 정확히 말하면 어떻게가 핵심이 아닙니다. '무엇을 위한 어떻게'가 되어야 하지요. 보다 구체적으로 말씀드리면 중장기 계획일 것입니다.
미래가 어떻게 될 것인지를 최대한 예측하고 미래로 가는 과정을 시간 단위로 계산하고 시장 상황에 맞게 필요한 것들을 정확히 내놓을 수 있는 계획이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그 계획 안에 올해 해야 할 일이 나오게 되는 것이라는 설명인 것이지요. 그저 지금까지 무엇을 해왔고 그것을 더 어떻게 잘할지만을 생각한다면 과거에 머무는 것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왜냐하면 올해도 그 과거의 공식에 머무를 것이라고 정하는 것과 사실은 같기 때문입니다. 물론 과거의 공식에 머물러도 되는 것들은 있습니다. 만약 제가 치킨집을 한다면 더 맛있는 치킨을 개발하는 것 외로는 관심이 없을 거예요.
저는 5개년 계획은 세워야 한다고 믿습니다.
그리고 오늘 그 이야기를 먼저 하고 그다음 왜 온주 밀감 이야기를 했는지를 풀어볼 계획입니다.
중장기 계획은 인사이트가 없는 경우에는 불가능합니다. 인사이트란 시대를 들여다보는 힘을 말합니다. 그래서 집단 지성으로 이뤄지지 않습니다. 개인의 탁월한 능력에 의합니다. 이 세계는 슈퍼스타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우리가 평소 아는 것 이상의 퍼포먼스를 보여줍니다. 축구에 대해서는 날고 긴다는 사람들만 모여서 월드컵을 하는데도 그중에 유독 더 잘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들은 동네 축구장에서 잘하는 사람들이 눈에 띄는 것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날고 긴다는 사람 중에서도) 크게 눈에 띕니다. 시장에서의 경쟁도 슈퍼스타가 없으면 이길 수가 없습니다. 더 크게 의존합니다.
말씀드린 바와 같이 온주 밀감 나무는 제주도에서 자라지 못합니다. 국내에서는 기록에 의하면 1911년에 일본에서 제주도로 14개 그루가 들여왔다고 합니다. 그리고 2019년 마지막 남은 한 그루가 고사하게 되면서 제주 최초 감귤나무는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고 합니다. 인사이트가 있는 인재는 온주 밀감에 비유할 수 있습니다. 더 정확히 말하면 온주 밀감을 생산해 낼 수 있는 접붙이는 가지이지요. 저는 이것을 이렇게 빗대어 서술하고 싶습니다. '1900년도 초에 14명의 인재가 우리 회사에 들어왔지만 스스로는 자랄 수 없었던 환경 탓에 최종적으로 전부 고사했다.'
그러나 온주 밀감 열매가 사라진 것이 아니지요. 오히려 제주에서 가장 많이 생산이 되는 귤이 되었습니다. 인재는 영입이 자체가 목적이나 목표가 될 수 없는 것입니다. 더욱이 인재가 조직 내에서 알아서 퍼포먼스를 내어야 하는 것으로 인식해서도 안됩니다. 조직이 영입한 인재가 진정한 의미가 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줘야 하죠. 여기서는 접목을 해주어야 한다라는 것으로 서술할 수 있습니다. 그대로 두면 큰 퍼포먼스를 기대할 수는 없으나 환경을 극복해 강한 생존력을 가진 탱자나무(*기존 조직)에 온주 밀감이라는 인재를 접목할 때에 비로소 상품성이 뛰어난 열매를 맺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접목이라는 것은 정확히 어떤 의미를 지닐까요?
피터 드러커 교수는 "하지 않아도 되는 일을 효율적으로 하려는 것만큼 쓸데없는 일이 없다."라고 언급합니다. 무슨 이야기인가 하면 대부분의 회사들이 할 필요가 없는 일들을 하면서 리소스를 낭비한다는 것입니다. 이 이야기를 조금 더 생각해보면 사실은 할 필요가 없는 일들을 해야 하기 때문에 정작 필요한 일을 못한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회사에서 할 필요가 없는 일들을 하는 이유는 리더십 중에 시스템(*또는 프레임)에 올무에 걸린 사람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한마디로 효율적으로 일을 하는 것에만 빠져서 모든 일을 효율적으로 하는 것에만 관심을 가진다는 뜻입니다.
인사이트는 어떤 일을 해야 하는지를 정한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이유는 이 세상에 어떻게 될지를 예측하는 사람은 그 예측에 의해 의미를 지니는 일을 아는 것이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의사 결정권자들이 인사이트가 없거나 인사이트가 있는 사람을 알아보지 못하면 어떤 일을 해야 하는지를 정하지 못한다는 뜻이 되기도 합니다. 사람은 이해하지 못하는 것을 선택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인사이트가 있는 사람들은 보통 사람들이 이해할 수 없는 이야기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어떻게 그 시절에 그런 생각을 하셨어요?"라고 결국 미래에 가서야 현재인 과거(오늘)를 설명하는 것이지요.
만약 지금 우리에게 100만 원을 주며 투자하라 한다면 테슬라나 애플과 같은 현재 이해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퍼포먼스를 발휘할 수 있을 것 같은 회사에 투자합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우리가 잘 모르는 스타트업에 투자할 수 있습니다. 그는 아직 우리가 이해하지 못하는 논리 또는 확신하지 못하는 논리를 말할 것입니다. 이를테면 이스라엘에는 개인용 비행기를 개발하는 스타트업이 있습니다. 우리는 개인용 비행기는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혹은 개인용 비행기가 상용화된다고 해도 그 회사가 주인공이 될 확신이 없다고 추론합니다. 당장 이해할 수도 받아들일 수도 없다는 것이지요.
그런데 테슬라라는 이름 자체도 생소했던 과거의 시기에도 어떤 누군가는 그 회사에 투자했었습니다.
이 글을 읽으시는 분들에게 다소 도전적인 이야기가 될 수도 있지만 어쩌면 우리가 이해하지 못하는 다소 허황되어 보이는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이 사실은 스스로 온주 밀감이라는 것을 증명하고 있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때로는 우리 중에 누군가가 그런 사람일 수도 있고요. 반대로 아주 현실적이고 이성적인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은 스스로가 탱자나무라고 말하는 것일 수 있습니다. 특별히 안정적으로 뿌리를 내려 생존하는 것을 무엇보다도 우선시 한다면 더욱이 그런 성향의 사람이라고 할 수 있지요. 다만 기억할 것은 우리가 최종으로 목표로 하는 것은 이 둘 간의 접목이라는 사실입니다.
분명 우리가 접목을 할 때 먼저 확인해야 하는 것은 안 해도 되는 일을 아는 지입니다. 온주 밀감이 맞는지를 확인하는 작업이지요. 그런데 그와 동시에 기존 리더십들이 어떤 사고를 가지고 (우리의) 일을 바라보는 지도 같이 파악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온주 밀감은 접목이 될 준비가 되었는데 탱자나무가 접목이 될 준비가 되지 않았다면 접목을 해도 의미가 없기 때문입니다. 온주 밀감이 하지 않아도 되는 일을 파악하고 그것을 없애려고 할 때 탱자나무가 (지금까지 스스로 열매를 맺었던 방식과 다르기에) 이해하지 못한다고 해서 못하게 한다면 접목이 성공적으로 이루어질 수 없습니다.
많은 회사들이 인재를 영입해놓고 빠지는 오류입니다. 조직은 때로 전통을 무너트리려는 시도라고 판단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상품을 만들어서 팔아왔던 방식과 우리가 이해하는 시장을 기반으로 생각할 때 온주 밀감이 추진하려는 것들은 (개인용 비행기 스타트업을 투자처로 바라보는 것과 같이) 말이 안 되거나 혹은 확신할 수 없는 것들일 수 있습니다. 또는 (오늘날까지 지켜왔던) 일들의 절대적 양과 나름의 중요성을 갑자기 무시하려는 시도라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많은 리더십들이 기존의 가치관 내에서 물리적으로 일을 많이 하는 사람이 회사에서 인정을 더 받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지금도 수많은 회사가 이 프레임에서 벗어나지를 못해요.
왜냐하면 우리는 똑똑한 사람보다 성실하고 희생적인 사람을 좋아하기 때문입니다.
저 역시도 하나도 다르지 않아요.
온주 밀감이 리더가 되는 애자일한 조직을 구성하기 위해서는 체계적 조직 구성의 함정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접목의 과정이라 설명할 수 있지요. 그런데 이 과정은 정말 쉽지 않습니다. 위에서 설명한 바와 같이 탱자나무는 강한 가시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 가시는 탱자나무의 강함의 상징입니다. 온주 밀감 나무는 자랄 수 없는 환경에서 탱자나무는 버텨온 것입니다. 그래서 탱자나무가 온주 밀감을 받아들이는 것, 즉 회사의 핵심 가치 생산을 주도적으로 담당하는 것을 인정하는 것은 상황적으로 너무나 어려운 이야기인 것이지요. 지금껏 내가 이 조직을 지탱해왔다는 것에 대한 증명을 내려놓는 것입니다. 그래서 다루기가 어려운 것은 보통 온주 밀감이 아니라 사실 탱자나무입니다.
우리 시대의 대부분의 사람들은 하부 조직이 상위 조직을 중심으로 묶여서 누군가로부터 관리를 받는 것에 익숙합니다. 그런데 이는 군대와 같이 관리를 위한 목적의 조직에서 어울리고 퍼포먼스를 발휘해야 하는 조직에는 어울리지 않습니다. 이유는 관리형 조직은 성과 기여도를 파악하기에 적합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개인은 결국 그저 (*그것이 어떤 일이든 간에) 열심히 하는 것만을 보여줄 수 있을 뿐입니다. 이 분위기가 심한 경우에 조직은 구성원 전체가 다 날밤을 새면서 열심히 일하지만 아무도 미래에 대해 책임을 지고 있지는 않을 수도 있습니다. 인재는 이런 조직에 흥미를 갖지 않습니다.
현대는 효율을 추구하는 시스템 의해 도리어 불필요하게 만들어 지는 일을 쳐내기 위해 인적 리소스가 반복적으로 낭비되는 것을 최소화할 수 있도록 조직을 구성합니다. 온주 밀감이 마음껏 (*아무 구애 없이) 탱자나무의 힘을 마구 뽑아 먹을 수 있도록 성격을 개조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많은 회사들이 탱자나무가 온주 밀감을 체크할 수 있는 구조 자체를 없애고 있습니다. 초단위적 주간 월간 등 상시 보고나 정기 회의 또 불필요한 회식, 전사적 업무 대기 등을 줄입니다. 또한 프로젝트 퍼포먼스를 따로 관리하는 PM 등의 직무를 없애고 있습니다. 대신 한시적(*프로젝트 형) 조직을 만들어 가정한 논리를 (추진 과정에 불필요한 보고나 체계 없이) 신속히 테스트해 보고 결과가 좋지 않으면 바로 해체하는 작업을 반복합니다.
이렇게 하는 이유가 뭘까요?
정답은 우리 자신에게 물어야 할 것이겠지요.
이제 정리하고 글을 마치겠습니다. 조직은 매년 재편성하는 것이 좋습니다. 상황과 환경이 급변하기 때문입니다. 조직을 편성할 때는 장기적인 계획이 있어야 합니다. 장기적 계획이 있기 위해서는 꾸준한 결산이 있었어야 하지요. 이유는 우리가 누구인지 어떤 시대적 사명을 받았는지를 알기 위함입니다. 장기적 계획이 세워지면 올해 무엇을 하는 것이 좋을지를 정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올해 필요한 구조를 만들기 위한 기본 베이스가 완성이 된 것이지요. 그러고 나면 필요 없는 일 (*예를 들어 관성적으로 해오던 일, 올해 목표에는 우선순위가 떨어지는 일)을 없애는 작업이 시작됩니다.
유의미한 작업을 하기 위해서는 인사이트를 가진 인재와 기존 리더십들의 일을 없애는 것에 대한 바른 이해와 사고가 있어야 합니다. 그다음으로는 똑똑한 인재들이 적소에 있어야 합니다. 큰 그림을 알고 자기 일 뿐만 아니라 구성원들의 일에 대해서도 관심을 가져 구조를 개선해 불필요한 일들을 적극적으로 없애려는 노력을 해야 합니다. 우리가 불필요한 일들을 하지 않으려고 하는 이유는 필요한 일에 집중을 하기 위함입니다. 여기서 '필요'라는 말에 대한 판단 기준은 올해의 목표입니다. 오직 올해 목표를 실현하는 것외로는 전부 불필요하거나 덜 필요한 일입니다.
끝으로 조직은 프로젝트 중심적으로 구성되어야 합니다. 구성원이 많아지는 기업일수록 하부 조직이 비대해집니다. 조직의 퍼포먼스를 관리를 하는 데 사용되는 리소스가 많아지지요. 왜냐하면 함께 일하는 것에 리더십의 관심이 집중되기 때문입니다. 보통은 이를 통해서 시너지가 발생한다고 생각하지요. 시너지가 발생하지 않으면 이 작업을 잘 못해서 그렇다고 이해합니다. 그런데 사실 오래전에 이러한 방식이 해답이 아니라는 것이 밝혀 졌습니다. 심지어 1X1이 2정도가 되는 경우도 많지 않습니다. (*대부분 0.몇 소수자리 숫자들이 서로 곱해서 더 낮은 소수가 된다고 말합니다.) 혹은 같은 업종간의 통폐합을 통해서 시장을 장악해 성장하는 경우만 더러 있을 뿐이라고 합니다.
현대는 에자일 한 조직 구성이란 가능한 범위 내에서 모두가 전부 실무를 하는데 시간을 사용할 수 있도록 구조화하는 것으로 정의합니다. 탱자나무에 접목된 실무 중심의 이 조직은 책임 소재가 분명하고 (시간이 오래 걸리는-중간에 '컷' 당하기도 하는- 의사 결정 과정 없이) 따라서 다양한 도전을 시도합니다. 반대로 전통적 개념의 관리자는 반대에 것에 관심을 가지고 그것을 실현하기 위해서 대부분의 시간을 사용하고 있게 되지요. 어느 순간 회사를 들여다 보면 무슨 무슨 장급들만 줄줄이 있게 되는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미 합류한 사람들은 장이 될 가능성이 없으니 이직을 결심하고 이미 장급으로 들어온 사람들은 새로운 장이 신규로 합류 할 때마다 상황이 매번 애매해집니다.
결론을 맺겠습니다. 우리는 무의식적으로 피라미드 형태로 조직이 구성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조직에는 항상 높은 사람과 낮은 사람이 있습니다. 높은 사람에게 낮은 사람이 하는 일을 책임지게 하는 구조이지요. 그런데 4차 산업혁명의 시대에는 그런 구조가 적합하지 않다고 지적합니다. 무엇을 할지를 정하고 그것을 할 사람들이 독립적으로 그 일을 수행하게 할 수 있는 구조가 필요하다고 언급합니다. 이것을 점 조직이라고 부릅니다. 결국 그 점 조직을 애자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오늘 저는 애자일을 위한 팁을 저 나름대로 짧지 않은 글로 잘 강론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물론 이 애자일이라는 단어 자체는 개발 용어에서 온 거라고 하더라도 말이지요.
대외협력실장
구마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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